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닷지 네온 (문단 편집) === 배경 === [[파일:external/cac560d1ffad17a0c80555de8cb39a2d72af84c4b6df3c84d8511bbf49d40ce8.jpg|width=700]] 본래 네온은 [[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|AMC]]가 기존에 판매하던 소형차 [[르노]] 얼라이언스(Alliance. 유럽명 르노 9)를 대체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했다. 기존의 딱딱하고 밋밋한 소형차의 "전형"에서 벗어나 훨씬 현대적인 소형차를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였으며, AMC 내부에서도 AMTech라는 별도 팀을 창설했을 정도였다. 1988년에 [[크라이슬러]]에게 인수된 이후에는 크라이슬러 출신의 개발진들까지 인수하면서 팀 인원이 740명에 이르는 "Small Car Platform" 팀으로 개편되어, 기존의 소형차 3종([[미쓰비시 이클립스|플리머스 레이저]], [[미쓰비시 미라쥬|플리머스/닷지 콜트]]. [[플리머스 선댄스|플리머스 선댄스/닷지 쉐도우]])를 한번에 대체하는 것으로 계획도 확장되었다.[* 이러한 계획은 회사 내에서의 반발도 있었는데, 1994년에 네온이 출시되었을 때는 이미 선댄스, 어클레임, 레이저, 보이저, 콜트 정도로 라인업이 변변찮던 플리머스의 라인업이 3개로 축소되는 바람에 플리머스 대리점에서의 반발이 컸다.] 13억 달러라는 적은 예산[* 참고로 비슷한 시대에 출시된 포드의 컨투어(Coutour. 미국시장용 [[포드 몬데오]])의 개발비가 60억 달러였다.]으로 31개월만에 새 차를 개발하되, 생산 비용 4천 달러와 판매가 8천 달러를 목표로 삼아, 일본 업체들처럼 팔 때마다 이익을 볼 수 있는 소형차를 만들고자 했다.[* 당시 미국 업체들은 소형차 및 준중형차로 별다른 이득을 보지 못했고, 크라이슬러도 자사 소형차인 선댄스/섀도우를 팔면서 손해를 보았다.[[https://www.thedetroitbureau.com/2022/09/the-rearview-mirror-chrysler-builds-a-profitable-compact-car/|#]]] 1991년에는 톰 게일(Thomas Gale)의 팀이 디자인한 컨셉트카가 "닷지 네온"이라는 이름으로 출품되었는데, 이 컨셉트카의 둥글둥글한 디자인이 양산형 네온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.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전 개발진이 AllPar에서 2022년 5월에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는 양산형이 먼저 개발되어[* 양산형 네온의 디자인은 [[닷지 인트레피드]]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.] 보다 통상적인 닷지의 범퍼 십자그릴과 예리한 헤드램프를 장착한 시안들을 준비하여 1991년 4월에 확정까지 냈으며, 초기 기획대로라면 1992년 1월에 테스트를 거쳐 1993년 11월에 첫 시험차를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. 하지만 디자인 확정 뒤 5개월이 지나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당시 회장 [[리 아이아코카]]가 원형 헤드램프를 장착할 것을 요청하였고, 당시 네온의 개발팀장이었던 밥 마르셀(Bob Marcell)과 마찰을 빚다가[* 리 아이아코카의 독단적인 행보에 반발하는 반응이었다고 한다. 밥 마르셀이 담당했던 2세대 크라이슬러 미니밴 라인업(닷지 캐러밴/플리머스 보이저/크라이슬러 타운 앤 컨트리)의 개발과정에서도 아이아코카가 간섭한 전적이 있었고, 1980년대 말의 리 아이아코카는 K-바디 플랫폼과 보수적인 디자인 테마의 고집, 적극적인 리뱃징, [[크라이슬러 TC 바이 마세라티]], [[람보르기니]] 인수 등의 잦은 실책을 보이고 있었다. 같은 회고에서는 밥 마르셀이 개발비용 증가를 염려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.] [[밥 루츠]] 당시 크라이슬러 부회장, 그리고 톰 게일이 원형 헤드램프를 지지하여 디자인 변경을 이루어냈다. 네온 컨셉트카의 반응이 좋았는데 굳이 인트레피드, 스트라투스같은 차기 신차들과 패밀리룩을 맞추려고 가로형 헤드램프를 장착할 필요가 없다는 설득으로 통과시켰다.[[https://www.allpar.com/threads/this-is-the-1993-plymouth-accolade.241105/|#]] 시장 조사 단계에서는 타협 없는 컴팩트카를 추구하여[* 밥 루츠 당시 크라이슬러 부회장은 네온의 제품기획을 두고 "디트로이트에서는 좋거나, 빠르거나, 싸거나 중 둘만 고르라는 옛말이 있지만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(There's an old saying in Detroit: 'Good, fast, or cheap. Pick any two.' We refuse to accept that.)"고 런칭 당시에 밝히기도 했다.] "고객들이 소형차를 싫어하는 이유"를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고객들이 원하는 소형차의 모습을 알아보았으며, 고객들의 불만 사항들을 통해 "안전, 편의장비, 스타일링, 경제성, 저렴한 가격과 유지비 및 보험료, 그리고 운전 재미"를 원한다는 조사 결과를 도출했다. 그 중에서는 크라이슬러 내부에서 잘 알지 못하던 "운전 재미"가 있는 차, 즉 "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잘 움직이는" 차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어 TWR[* Tom Walkinshaw Racing, 1976년에 설립된 엔지니어링 업체로 모터스포츠 위주로 활동하다가 양산차 개발에도 참여,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[[대우자동차]]의 워딩연구소를 인수했다.]과 굿이어 타이어, 가브리엘 등의 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랙 엔드 피니언 스티어링, 뒤틀림 강성이 강한 스티어링 칼럼 등을 네온에 적용해 핸들링 성능을 높일 수 있었다. 바디 라인업은 세단과 쿠페의 2종류로 구성했고, 모든 라인업에 2리터 16벨브 132마력 SOHC 엔진을 적용하는 것은 물론 "스포츠 쿠페"라는 고성능 버전을 위한 DOHC 150마력 엔진도 구비해두었다, 편의장비 역시 운전석/조수석 에어백을 기본으로 적용하는 것은 몰론, ABS와 통합형 어린이 시트를 적용해 장비구성을 체급 대비 빈곤하지 않게 짰다. 다만 비용을 절감하고 내구성에서 손해를 덜 보기 위해 자동변속기는 4단 대신 3단[* 변속비 때문에 네온의 주행성능을 깎아먹는다는 평가를 들었고, 2세대의 수출차 사양과 2002년식 내수형 모델부터 4단 자동변속기로 바뀌었다.]을 선택했으며, 앞좌석 골격은 구형 [[혼다 시빅|시빅]]의 것을 사용했다. 네온의 생산지로는 미국 [[일리노이주]]의 벨비디어 공장과 멕시코 멕시코주의 톨루카 공장이 낙점되었으며 1세대에 한정하여 베네수엘라 카라보보의 발렌시아 공장에서도 조립생산이 이루어졌다.[* 개발 당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회장이었던 리 아이아코카는 네온을 전량 멕시코에서 생산하려고 했으나 밥 루츠 등이 멕시코에서 생산하면은 당시 미국 법령상 미국 자동차메이커 대상 연비규제인 CAFE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.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서는 아이아코카의 고집을 꺾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"일본 경쟁사들을 장기적으로 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"는 논조로 애국심을 자극하여 승인을 받아 냈다고 밥 루츠가 자서전에서 회고했다.[[https://books.google.co.kr/books?id=ZhoC7pbRs7kC&pg=PT72&lpg=PT72&dq=chrysler+imperial+lamborghini+edition&source=bl&ots=rr6QVO8Px4&sig=Jys-l287YPzT2EO_ehmmzgLEZ9I&hl=ko&sa=X&ved=0ahUKEwiMgf-454zSAhXJfrwKHZEBApkQ6AEIOTAH#v=onepage&q=chrysler%20imperial%20lamborghini%20edition&f=false|#]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